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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조대왕 과 세종대왕과 공통한 것 덧글 0 | 조회 63 | 2019-07-15 17:32:47
예지이모  

이것은 무론 세조대왕만의 주장이 아니라, 실로 태조대왕 과 세종대왕과 공통한 것이었다. 다만 여조를 넘어뜨리고 이씨 조선을 세울 때에 몸소 참모장이 되어서 유가의 세력 을 이용하신 태종대왕만이 유가의 주장대로 불교를 눌렀을 뿐이었다.

그러나 날로 늘어가는 유신의 불교 배척의 세력은 세조대 왕과 같은 이로도 당해내기가 참 어려웠다. 세종대왕의 어 우 십삼 년간의 번민은 여기 있었다고 할 만하였다. 그렇게 도 귀찮게 덤비는 유신의 반대를 높은 식견과 왕의 위력으 로 눌러가면서 마침내 원각사 건축까지 완성하신 것이었다.

말은 원각사 낙성이라고 하지마는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. 건물은 대부분 당년에 되었고 구리 오만 근 을 들여서 부었다는 큰 종도 작년에 완성이 되었다. 불교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꼽히는 한수석 십삼층 탑이 맨 나중으로 이 해 봄까지에 거의 완성이 되고, 그러고는 대원각사의 본존이 되실 옥불은 아직 아니되었으나 금불도 완성이 되었다. 그러나 삼보 중에 둘째 되는 법───이 경 우에서는 세조대왕께옵서 몸소 입으로 부르시와서 김수온 (金守溫), 황수신(黃守身), 한계희(韓繼禧), 노사신(盧思愼) 등으로 하여금 받아쓰게 하셨다는 원각경 열 권이 맨 나중 으로 바로 며칠전에야 판에 박혀서 나오게 되었다.

이 모양으로 대원각사의 낙성이라는 것은 세조대왕께는 필 생의 대사업이요, 가장 소중한 사업이요, 또 가장 힘드는 사 업이었다.

이 날을 축하하기 위하여서 하루 이틀 전부터 장안 대소 민가에는 집집에 채색등을 달고 운종가(雲從街─지금 종로) 대로, 광교, 혜정교(惠政橋), 구리개, 황토마루 같은 데는 말 할 것도 없고 경복궁, 창경궁에까지도 높다랗게 더그매를 매고 거기는 오색등과 오색 깃발을 늘여서 장안 천지가 온 통 꽃밭이 되었다.

한성부 경행방 (漢城府慶幸坊)인 대원각사 경내는 말할 것 이 없다. 드높은 당대에는 오색 채번이 늘여 있고 산문에는 사람의 키만큼씩 큰 등이 좌우로 수십 개가 딴기둥에 달려 있고, 그 속에는 팔뚝 같은 황초가 꽂혀서 밤 되기를 기다 리고 있다. 상감의 거둥이 듭실 길에는 새로 황토가 깔리고, 아무도 그 위로 걷지 못하도록 금줄을 늘이고 푸른 솔가지 로 덮여 있었다.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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